시사

[ 르포 ] ‘불법 다단계 합숙소 현장 가다’

김종혁대표 2011. 12. 14. 09:09
불법 다단계 왜 도대체 돼? 뿌리뽑지 못하는 걸까요?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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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중앙일보 탐사보도 ‘불법 다단계 합숙소 현장 가다’


고성표 중앙일보 탐사보도팀 기자

탐사보도 팀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거마대학생 5,000명 슬픈 동거’(9월 20~23일 4회 연속 보도) 첫 기사가 나간 9월 20일 오전부터 탐사팀에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라 믿기 힘들 정도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연락도 안 되는 아들딸 좀 찾게 도와 달라.”이날 하루에만 취재팀과 송파서에 걸려온 전화가 100통이 넘었다. 인터넷 반응은 더 뜨거웠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 걸린 거마대학생 기사는 클릭 수가 폭발했다. “대학가 주변 가판대에 신문이 동났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타 사들도 분주히 움직였다. 지상파 3사 시사 프로그램들은 탐사팀에 취재 도움을 요청해 왔다. 본지 보도 후 ‘거마대학생’의 적나라한 실태가 방송을 통해 다시 한번 안방에 전달됐다.

처음 ‘거마대학생’ 아이템을 고민하게 된 것은 7월 말 한 경찰 관계자와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청 간부 A씨가 “고형, 혹시 대학생 다단계 얘기 좀 들어 봤소?”라고 물어왔다. 기자는 며칠 전 TV 뉴스가 기억났다. 대학생 십수 명이 지내는 좁은 지하방(합숙소)을 경찰이 압수수색하는 장면이었다. A씨는 “수박 겉핥기 보도만 할 거냐”며 “언론이 자극적인 몇몇 장면을 내보내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 위주로만 보도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중앙일보 탐사보도팀이 제대로 취재해서 심층 보도를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A씨와 헤어진 후 거마대학생과 관련된 최근 보도들을 찾아봤다. A씨 말대로 그동안은 일부 대학생들이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역 일대에서 합숙을 하며 불법 다단계에 빠져 있다는 스트레이트성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며칠 후 기자는 팀 후배와 함께 송파경찰서 다단계특별수사팀을 찾았다. 송파서 지능수사팀 황동길 경감은 “몇몇 언론에서 취재하겠다고 찾아왔지만 그냥 단 건으로 보도하고 끝난 게 대부분”이라며 “제대로 할 거 아니면 괜히 수사하는 데 방해만 된다”고 했다. 취재팀은 이날 황경감과 “경찰이 최대한 취재 협조를 해 주면 심층 보도물로 꼭 만들어 내겠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거마대학생’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사전에 거여·마천동 현장 탐문 취재

매번 경험하는 것이지만 탐사보도는 사전 취재가 정말 중요하다. 과연 기삿거리가 되는지, 또 어느 정도의 심층 취재가 필요한지, 취재 기간은 얼마나 소요될지 등 전체적인 윤곽이 사전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이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사전 취재는 보통 짧게는 2~3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 아이템과 관련된 충분한 자료조사와 1차 현장방문을 통한 주변 조사, 취재 대상자 선정 등 사전취재가 얼마나 치밀하게 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과정이다.불법 다단계 대학생들이 모여 산다는 거여·마천
지역의 주민들을 접촉해 평소 이들의 생활상을 간접적으로 들어 보기로 했다. 마침 송파서에는 몇몇 주민들의 민원이 접수된 상태였다. “대낮에 정장 차림의 젊은 청년들이 무리 지어 동네를 돌아다니는 게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민원인을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민원인은 마천동의 3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세 들어 사는 50대 남성 B씨였다. B씨는 지난 1년동안 아래층에 살고 있는 젊은 남녀들에 대해 쉴 새 없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18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20명이 집단으로 합숙한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한편에 항상 물건과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어 불편하다. 계단에서 밤늦게까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시끄럽게 한다. 새벽 5시쯤 되면 다들 어디로 가는지 소란스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깰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리 지어 돌아다니며 무슨 사고를 칠까 솔직히 걱정될 때가 많다.”

이런 불편함을 호소하는 주민들은 주변에도 더 있었다. 특히 동네 공터나 공원 등에서 담배를 피우며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고 얘기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취재팀은 실제 대학생들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보기로 하고 오전 5시 30분부터 집단 합숙소 근처에서 이들의 출근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어렵지 않게 사실로 확인됐다. 오전 6시가 되자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20대 초·중반 청년들이 마을버스를 꽉꽉 채웠다.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은 인근 가락동·석촌동 등 사무실 밀집지였다. 또 이들이 퇴근하는 오후 6시를 전후해 합숙소가 있는 거마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풍경도 목격할 수 있었다. 놀이터·공원·골목길마다 전화를 돌리는 청년들이 눈에 띈다. 다세대·다가구 주택 연립주택 중에 엄청난 양의 빨래가 걸려 있는 곳은 예외 없이 이들의 합숙소였다.부동산 중개소를 통해 알아본 사정도 비슷했다. 사전 취재를 통해 왜 거여·마천 지역에 불법 다단계 일을 하는 대학생들의 집단 합숙소가 몰려 있는지 하나둘 의문이 풀려 가기 시작했다. 거여·마천동이 다단계 천국이 된 것은 불법 다단계 업체의 사무실이 주로 송파구 가락동·석촌동 등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합숙소는 사무실에서 가까우면서도 방값은 송파구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인 거여·마천동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싼 방값 외에도 ‘강남 3구’라는 상징성 때문에 불법 업체들이 모여 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가 주로 공략하는 대상은 물정 모르는 20대 대학생, 특히 지방 학생들이다. 이들을 속여 끌어들이려면 번듯한 회사로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한 불법 다단계 업체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했던 최 모 씨를 통해 증언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최 씨는 “대상자를 모을 때 강남에 있는 회사,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상업중심지에 사무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했다.





정신과 치료·가족 자살 등 충격 연속

사전 취재를 마치고 경찰의 도움을 받아 피해자들을 본격적으로 접촉했다. 그들이 왜, 어떤 과정을 통해 불법 다단계에 빠져드는지 궁금했다. 취재팀이 만난 피해자들은 20명 정도였다. 
그중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피해자 아버지가 실의에 빠져 있다가 자살한 이야기였다. 대학생 피해자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취재진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대신 취재진은 피해자의 이모를 수소문해 만날 수 있었다. 이모와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불법 다단계가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인지 확인시켜 준 순간이었다. 불법 다단계 업체에서 겨우 빠져나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학생도 만날 수 있었다. 취재과정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우연히 찾아왔다.

취재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흐른 8월 중순 취재진이 송파경찰서 다단계특별수사팀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숨을 몰아쉬고 사무실로 뛰어들어 왔다. 사연을 들어보니 불법 다단계 업체의 집단 교육장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도망 나왔다는 것이다. 핸드폰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은 어렵지 않게 사실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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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대학생이 합숙하면서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구에만 5000여 명의 남녀 대학생이 집단 수용돼 있다. 석촌·서초·수서 등 지역까지 포함하면 경찰 추산 1만 명이 넘는다. 올 추석에도 이들은 집에 가지 못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 장사를 하는 불법 다단계 업체의 세뇌와 감시 탓이다. 업체들은 허황된 대박의 꿈을 미끼로 대학생을 유혹했다.

 8월 24일 오후 6시, 본지 취재팀은 마천동 다세대 주택가 골목의 15평짜리 지하 합숙소를 급습한 수사팀을 동행 취재했다. 20대 초반의 남녀 대학생 14명이 합숙하는 현장이다. 주방 싱크대 통 안에는 50개 정도의 칫솔이 촘촘히 꽂혀 있다. 칫솔을 공동사용하는 구조다. 학생들이 업체로부터 구입한 건강음료·비누세트 등이 한쪽에 쌓여 있다. 위생상태는 형편없다. 더러운 빨래, 불결한 그릇, 음식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다. 변기, 세면대에도 오물이 끼어 있다. 경찰이 압수한 장부에 따르면 15명이 식료품비로 지출한 금액은 한 달 20여 만원에 불과했다. 라면으로 때우거나 밀가루를 포대째 사두고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깃밥이나 반찬도 정해진 양 이상은 먹지 못한다. 이들은 이를 ‘칼밥’이라고 부른다.

 합숙소는 철저한 계급사회다. 대출을 받거나 집에서 돈을 끌어와 실적이 올라야 직급이 올라간다. 자기 밑으로 회원을 데려와도 마찬가지다. 중간 관리자 격인 방장은 합숙소의 최고 권력자다. 방장 출신인 유모(29)씨는 “내가 왕이고 내 말은 곧 법이다. 나이와 무관하게 내게 존댓말을 써야 한다. 방장은 독방을 쓰고 나머지는 한 방에 모여 잔다. 하위 직급자들이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담당한다. 식사도 내가 숟가락을 들어야 시작된다”고 증언했다.

 부산이 고향인 대학생 김성철(24)씨는 올 추석을 마천동의 다른 합숙소에서 보냈다. 동료 합숙생 10여 명도 마찬가지다. 방장이 이탈을 막았기 때문이다. 불법 다단계 업체들은 방장에게 ‘명절 시나리오’를 만들게 했다. 내용은 이렇다. 학생들이 집에 전화한다. 이때 방장이나 상위 직급자들은 통화 내용을 밀착 감시한다.

학생들은 시나리오에 따라 ▶출장 ▶행사 ▶여행 ▶연구 ▶자원봉사 등 다양한 핑계를 댄다. 또 다른 방장 출신 박모씨는 "가족과 친인척을 만나면 마인드(세뇌)가 깨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불법 다단계 업체의 유혹에 빠져드는 주된 이유는 가난이다. 마천 합숙소에서 1년6개월을 생활하다 빠져나온 대학생 하모(23)씨는 “학생 대다수가 가난한 지방대 출신”이라며 “졸업 후 취업을 못했거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을 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금까지 경찰이 조사를 마친 피해자 115명 가운데 85%가 20대 초반의 지방대 출신이다. 양극화 현상이 빚은 비극이다.

 취업 못 하고, 등록금 없는 젊은 영혼의 절망을 파고 드는 것은 동문이나 고향 친구다. 따라서 경계심은 애초부터 없다. 친구는 서울 강남권에 있는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취업할 수 있다고 꼬인다. 성공을 위해 고생쯤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서울로 진출할 수 있다는 말에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끊임없는 교육과 설득,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자신에게도 길이 열릴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합숙소 생활이 시작되면 외부와의 소통은 차단되고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해진다.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방장은 휴대전화부터 압수한다. 회원 유치 때만 전화를 사용할 수 있다. 가족과 통화할 때도 시키는 얘기만 할 수 있다. 통화 내용도 함께 듣는다.

 신문이나 TV도 맘대로 볼 수 없다. 외출도 방장이나 상위 직급자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외출 시에는 감시자가 따라붙는다. 오전 4시 기상 후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육장에서 세뇌교육이 실시된다. 합숙소로 돌아오면 다시 1대1 면담이 이어진다. 딴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들만의 폐쇄된 작은 세상이 만들어진 셈이다. 하씨는 “처한 상황에 따라 맞춤형 대화와 설득이 제공되고 고민을 들어준다”며 “하루하루 지날수록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잘 대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서울 송파경찰서 다단계 특별수사팀 황동길 경감은 “불법 다단계 피해자 가운데 자살하거나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매년 수십 명에 달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다단계 판매=상품 소비자가 하위 판매원이 돼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 판매원 단계가 3단계 이상이다. 하위 판매원들 수익 중 일부는 상위 판매원들에게 연쇄적으로 지급된다. 다단계 판매회사는 한국 암웨이 등 72곳으로, 방문판매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불법 다단계 업체와는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