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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

[ 전쟁 ] 제국주의의 표상 - 보어전쟁 (1880)

*이전쟁에서 기관총과 저격의 효과가 검증되었었다.
*보어인이란 남아프리카에 영국인보다 먼저 정착한 네덜란드인을 지칭한다.
*보어군인 7만명 VS 영국군인 45만명 의 대결이었고, 영국은 민간인 21만명을 수용소에 가두었고, 그중 2만명을 학살했다. (굶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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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전쟁은 남아프리카 지역에 먼저 정착해 있던 네덜란드인들과 영국인들의 전쟁이다.

19세기말 영국이 남아프리카의 보어인이 세운 트란스발공화국을 합병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 남아전쟁(南阿戰爭)이라고도 하며 제1차 전쟁, 제2차 전쟁으로 나뉜다.

 1877년 트란스발의 재정적 위기와 독일의 개입을 두려워한 영국이 트란스발을 합병하자 1880년 보어인이 봉기하여 1881년 마주바힐에서 영국군에게 승리, 같은 해 4월 프리토리아협정으로 주권을 회복했다(제1차 전쟁). 이어 1886년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의 케이프식민지총리 C.J. 로즈는 합병을 계획하고 친구인 제임슨에게 명령하여 1895년 트란스발을 침입하였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J. 체임벌린 영국식민지장관과 A. 밀너 케이프식민지지방장관은 합병을 포기하지 않고 노골적인 내정간섭을 시작했다.

 트란스발공화국의 S.J.P 크리어대통령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양보를 거듭했지만 결국 오렌지자유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1899년 10월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제2차 전쟁). 영국은 본국으로부터 구원군을 보내 1900년 3월에는 오렌지자유국의 수도 블룸폰테인, 6월에는 트란스발공화국의 수도 프리토리아를 점령했다. 그러나 그 뒤 C.R. 드베트·J.H. 드 라 레이 등이 이끄는 보어인 게릴라군이 반격해 왔기 때문에 참모총장 H. 키치너는 게릴라의 근거지를 궤멸시키기 위해 비전투원의 집과 논밭을 모두 태워버리는 소탕작전을 전개했다.

 이 때문에 세계인의 동정은 보어인에게 모이고 영국 본국에서도 반전의 소리가 높았지만, 1902년 보어인은 결국 항복하고 베레니깅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트란스발과 오렌지자유국은 영국의 직할식민지가 되었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