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부한 국제 경험과 리더십으로 나눔을 경영하다'
김종혁 나눔경영컨설팅 대표
그를 본 첫 느낌은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두 시간 남짓의 인터뷰가 끝났을 때 그 느낌은 적중했음을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밴드 활동과 어학, 미술,글쓰기에 능통하였던 그는 대학 시절 ‘별난 대학생 배낭 여행가’로서 자신의 오지여행기를 언론사에, 카툰을 인터넷에 연재했으며 재즈,블루스 피아니스트로 이태원 강남의 재즈바에서 활동하는등 굉장히 독특한 활동상을 보여주었다. 여행비 지원을 받으며 여행기 연재를 하겠노라 몇 개의 신문사 문을 두드렸던 기회가 열렸고, 여행 중 사업 수완이 발휘돼 무역과 상업이 날로 번창하는 등 그에 관한 일화도 많다. 이후 1인 창업부터 대기업까지의 풍부한 경력은 그가 전략 마케팅 전문가이자 대한민국 명강사로 거듭나는데 큰 자산이 되었다. 들을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는 김종혁 대표의 이야기를 <위클리피플>이 조명해 보았다.
_취재 이선진 기자, 장덕진 기자 /글 이선진 기자 [ 주간인물 '위클리피플' ]
● 다양한 경력을 무기로 강사 세계에 입문하다
대학시절부터 해외 영업과 마케팅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던 김종혁 대표는 중앙대 영문학과 졸업 후 1인 무역상 창업을 거쳐 문구제조업체에 입사를 하였다. 중국 담당과 동남아 담당자로 중책을 맡으며 종횡무진 뛰었던 B2B영업은 그에게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2007년도 말 30대 초반에는 대만 지사장으로 발령이 나 반도체용 다이아몬드 공구 글로벌 시장 개척에 성공하였고 마케팅 세일즈에 대한 전반을 섭렵했다. 경력이 쌓이자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국내 중견기업으로 돌아와 해외영업 마케팅 일에 매진했던 그는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자네가 성공하려면 회사를 위해 자네와 자네가족을 희생해야 하는 거야.” 주말 없이 일하던 어느 날 회사 임원진이 그에게 건넨 말 한 마디, 그리고 이어서 터져 나온 그의 말은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돈을 버는 이유가 뭔가요? 저와 제 가족, 주위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도 버는 것 아닌가요?” 가치관이 맞지 않는 직장에서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나온 그는 이후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대기업에 몸을 싣는다.
대기업 입사와 동시에 철저히 창업 준비를 시작한 김종혁 대표. 인맥 관리의 체계적인 디지털화(CRM구축)는 물론, 콘텐츠 기획, 블로그 마케팅 등 그가 주력한 일들은 홀로서기의 과정이었다. 기업 강사를 할까, 교육대학원에 입학해 교직 과정을 밟을까 많은 고민을 할 때쯤 그는 건강상 문제를 감지한다. 희귀성 면역질환으로 급격하게 몸이 나빠진 것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위기를 기회로 삼은 그는 MBA 대학원에 진학하겠노라 결심했고 노력 끝에 고려대, 서강대, 경희대, 한양대, 중앙대 등 지원한 대부분의 학교에 현업에서 같이 일했던 많은 외국인 지인들의 추천서와 다양한 경험을 좋게 봐주신 교수님들의 배려로 합격,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MBA(마케팅 전공)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게 된다. 고려대 KMBA 학생회장직을 맡으며 리더십을 발휘한 김 대표. 그는 창업과 일, 공부를 병행하면서 지난 10여 년 동안 현장에서 경험한 일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론과 실제가 만나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 블루오션을 찾아 전문성과 실력을 인정받다
교육시장으로 눈을 돌려 시장을 분석해보니 가장 포화된 시장이 리더십, 웃음치료, 동기부여, 소통, CS와 같은 강의 분야였다. “마케팅 컨설팅이나 창업 마케팅 전문 분야는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전문 영역입니다. 그중에서도 B2B마케팅 전문가는 주변에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요.” 진입 장벽이 높기에 B2B마케팅 강의를 선택한 그는 시장의 정확한 니즈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B2B마케팅에는 최종 사용자와 구매 결정권자의 개념이 다른데요. 현장에서 쓰는 몇천~몇억 상당의 기계를 수십% 저렴하게 제안한들 최종 사용자와 비용은 크게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매팀과 기업 오너에게는 비용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최종 사용자에게는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사용의 편의를 도와주는 측면이 더 중요한 부분이지요.” 새롭게 접근하는 ‘컨설팅’, 대상에 따른 ‘니즈 충족’과 자타 공인 ‘강의 실력’은 그만의 경쟁력이었다.
김 대표는 B2B마케팅 방법을 교육 시장에 접목시켰다. 대기업, 정부기관 강의의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기관들을 자료 조사하여 리스트를 정리했다. 강의교육 담당 중요한 키맨을 찾아 그들에게 메일링과 문자, 전화 통화를 시도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는 일이 강의 활동의 시작이었다. 교육계통이 아닌 마케팅 영업자 출신의 강의 제안은 기업교육 담당자에게 신선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자연스레 기회도 찾아왔다. 2012년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의 고창영팀장이 그에게 러브콜을 한 것. 김 대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왠지 당신이 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팀장의 말에 그는 초보강사 답지 않은 ‘최고 평점을 받은 강의’로 기대감에 부응했다.
강의 활동 2, 3년차가 되었을 때 마케팅, 리더십, 소통, SNS강의 시장이 하향선을 그리는 것을 간파한 그는 불경기인 시장 흐름에 따라 창조경제의 모토아래 정부의 지원이 급격히 증가한 창업 마케팅 분야로 강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인문학과 접목된 비즈니스 전략을 전쟁과 전투에 빗대어 준비, 혁신, 수비, 공격, 마무리까지 그만의 독창성을 살린 시리즈 강의로 재미있게 콘텐츠를 구성한 것. 최근에는 조선사에 관심이 많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사하는 내용을 편집해 넣고,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이나 재즈, 여행 등 인문학적 배경을 강의 소재로 삼아 마케팅에 접목시킨다고 한다. 대기업과 정부기관으로부터 다수의 강의를 의뢰받는 그는 자신이 맡은 강의를 100% 이상의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길이 최상의 마케팅 방법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가장 잘하는 영업은 그 일을 특출나게 잘하면 된다. 강의 의뢰를 받았을 때 강의를 완벽히 잘하여 모든 사람이 열광하게 만든다면 다시금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강의 비결 첫 번째가 다른 강사들과 다른 신선한 ‘재미’라면, 두 번째는 청중들에게 최선을 다해 쉽게 배움을 드리는 ‘친절함’이며, 세 번째는 최종 사용자인 청중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다. 교육 의뢰가 들어오면 클라이언트의 매출, 트렌드, 제품 등 기업에 대한 재무재표 분석과 함께 청중들의 나이, 성별, 니즈 등을 파악해 시뮬레이션 해보고 철저하게 강의 준비를 한다는 김 대표는 끊임없이 연구하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교육자였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밴드활동에 빠져있다는 그는 일찍이 시각적인 부분과 소리에 재능을 발견하여 외국어에 능통하였고 음악이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 예술성이 돋보였다. 강의 현장에서는 청중과 호흡하며 미친 듯이 열강을 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그를 보니 일과 삶, 조화로움의 여유마저 느껴졌다. 무슨 일을 하든 중요한 건 ‘자신감’이고,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면 피터지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며,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성공한다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더 작은 분야에서 더 강력한 퍼스널 브랜드만이 변화가 심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을까? 미래시대 리더의 롤모델을 앞서 만나본 1인기업 나눔경영컨설팅 김종혁 대표와의 뜻깊은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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