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썼던 글입니다.
-----------------------
1주일전 북경시내 중국외국대사관 거리를 택시를 타고 지나갈 때였다. 평상시와 다르게 거리는 차들로 꽉 막혀있었고,일본대사관 앞은 성난 중국인들로 혼란스러웠다. 4월10일 북경에서부터 4월17일,18일 상해까지 이번출장은 1919년 5·4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반일시위 와 함께한 여정이었다.
요즘 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가 부흥하는 기운이 아주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다. 일본은 ‘평화주의’라는 가면을 벗고 기존에 갖고 있던 대외정책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으며,중국은 뒤늦게 갖춘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외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이러한 상황은 16세기 후반 일본을 통일한 신흥 군사정권과 거대한 대륙국가 명나라,중간자적인 입장이었던 조선의 관계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인 임진왜란은 전란 중에 대두하기 시작한 여진의 청(淸)나라에 의해 명나라가 망하고,일본에서는 도요토미 대신 도쿠가와[德川]의 막부(幕府)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조선에서는 국토의 황폐화로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등 ‘조선·명·일본’ 3국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전쟁에서 나타난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 74년생인 본인의 어린시절에 ‘이순신’은 여러부분에 걸쳐 다양하게 나의 삶에 영향을 주어왔다.가장 먼저 읽었던 위인전‘성웅 이순신’에서 무엇보다 가장 기억나는 두 장면은 무과 시험중에 말에서 떨어져 부러진 다리를 버드나무로 동여매고 다시 달렸는 장면,마지막 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을 맞고 그 유명한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했던 마지막 장면이다. 저녁때 아버지 담배심부름 가면 볼수 있었던 담배갑속의 거북선,1986년 수영장만한 미니어쳐 바다를 만들어 촬영했던 조선왕조 500년’임진왜란’드라마,애니메이션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에서는 영희와 훈이가 극구 반대를 하지만 김박사는 우주전함 거북선의 부품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태권브이를 해체해 버리기도 해서 참 안타깝기도 했던,’이순신’이란 브랜드는 나에게 참 다양한 이미지를 줘왔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지금까지의 충무공 이순신의 이미지는 어쩌면 마치 현재까지 신격화 되어 집과 상점에 모셔지고 있는 삼국지의 관우처럼 번뜩이는 눈동자,긴수염,넓은 어깨, 과연 전투용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큰칼로 묘사되어져 왔다. 어쩌면 사실보다 더 과대 포장되어 지고 ,성웅화,신격화된 이순신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찾기는 아주 힘들었었다.
이 책은 영웅 이순신의 인생에 현실성을 부여하며,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생하였다. 영화 같은 생동감을 주는 이순신 자신의 1인칭 시점으로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낭인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를 만화로 재생한 ‘배가본드’와도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일본에서는 이미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들에 대한 다양한 재해석이 있어왔다.)
‘그리스, 페르시아의 살라미스 해전, 스페인’,’오스만 투르크의 레판토 해전’,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트라팔가르 해전’과 함께 세계 4대 대첩으로 불리는 ‘한산도 대첩’에서는 단 13척의 배로 왜(일본)의 133척의 배를 격파하는등 많은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대승을 거둘때마다 선조의 의심과 시기에 어려움을 겪고 백의 종군을 두번이나 하며 많은 고문과 문초를 당한 이순신은 매 전투마다 조정과 선조등 많은 인물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두려워하고 항상 고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화도 회군을 하며 조선을 세웠던 ‘이성계’,쿠데타로 제5공화국을 세웠던 ‘전두환’처럼 제2의 ‘장보고’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싶은 사욕은 없었을까? 과연 그의 본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직접 보지 않는 이상 그에 대한 글과 묘사를 보고 상상하는 것이 전부인 지금 참 답답함을 느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성군으로 보이며 이미지 정치를 한 ‘유비’의 전략가였던 ‘제갈공명’처럼 ‘이순신’ 역시 큰칼은 지배의 상징으로 모셔두고,본인은 과학서적,병법서적에 몰두하며 전략을 세우던 몸이 약한 왜소한 학자스타일의 지장이 아닐까? 거친 바다위 흔들리는 거북선위에서 휘날리는 군기와 병사들의 함성속에 우뚝 서있는 장수가 아니라 어두침침한 서고에서 눈빛을 반짝이던 ‘전략가’였지 않을까?
암살의 위험으로 벗어나고자 影武士(카케무샤)를 썻던 일본 장수들처럼 ‘이순신’ 역시 자기를 닮은 장수를 선봉에 세우고 최후의 전투에서 그를 죽이면서 화려하게 역사의 뒤로 사라지며 새로운 자기만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까? 밥냄새가 나는 여염집 아낙네와 새로운 사랑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그렇게 좋아하던 독서와 연구에 빠졌을수도 있고,일본으로 건너가 네덜란드 상인들로부터 새로운 조선술에 대한 정보를 접한후 조선,해전 전문가가 되었을수도 있었으리라. 발칙하지만 이런 상상은 굳어진 뇌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준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2.20 / 업체 / 대불황의 시대, 한국경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동원 지음) (0) | 2016.02.22 |
---|---|
한국 (경제가)이 망할 수 밖에 없는 48가지 이유 (0) | 2013.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