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年 4月 29日(金)
어머니
놀라지 마십시오. 너무 염려하시지 마십시오.
아세아 하늘에 바야흐로 몽롱한 거먹구름 널리 퍼져 세계 도시인 상해에도 덮혔습니다.
1월29일 오전3시부터 어지러워졌습니다. 고요히 잠자던 ‘콜콜’ 숨소리는 ‘아! 어이!’하는 울음소리로 변했습니다. 비행기 소리는 우루룽, 대포 소리는 꽝 꽝, 기관총 소리는 호도독 호도독 콩 볶았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힘의 발현이다. 민족의 힘과 힘이 마주치는 소리입니다.
30일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는 휴전상태이나 오전에 또다시 교전이 될 모양입니다.
비행기 열네대가 공중을 울리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국 태도도 점점 긴장되는 모양입니다.
29일 싸움 결과는 일본 비행기 다섯대 떨어지고 철갑차 세대 뺏기고 기관총 몇대 뺏긴 모양이며, 병대 8백여명 죽었고 중국측은 압북지방은 불로 거의 다 타고 민간인 사상자는 무수한 모양입니다.
공동조계와 법조계 내에는 아직 아무 염려 없습니다. 29일 아침 법조계에도 폭탄 다섯 개나 떨어져 사상자가 십인가량, 남경정부는 낙양으로 옮기었고, 일본 군대는 구원대가 많이 건너왔으니 불가불 조석으로 충돌될 모양입니다.
진작 편지는 올리려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승리의 결과와 쌍방의 해결을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껏 있었으나 쌍방의 해결은 고사하고 점점 험악하여집니다.
이후로 또 간간이 통지 올리겠사오니 너무나 염려마십시오.
조계내에는 각 경계선마다 철망을 늘이고 패병 못 들어오게 방어하고 있습니다.
이만 아뢰옵나이다.
1931년 1월31일 자,윤봉길 상서.
“니야오치촹~(你要起床)”
부시시한 머리에 풍만한 몸집을 자랑하는 중국인 아줌마 ’메이’ 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날깨운다. 창문에 꽂아둔 대나무에 걸려 퍼덕이는 속옷들 사이로 아침햇살이 스며든다. 7시다.앞으로 3시간.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맨발을 딪고 체중을 싣자 ‘끼이익’하는 특유의 마루 뒤틀리는 소리가 난다. ‘이 듣기 싫은 소리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고향 충남 예산의 집 뒷산 내가 자주 누워있곤 하던 바위가 생각난다. 햇볕에 따뜻해진 바위에 누워 얼굴을 스쳐지나는 풀내음 가득한 바람,벌레소리…
먼저 침대에 기대어 기도를 하고 내 마지막 하루를 시작해야 겠다.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 동포여 !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백 년을 살기보다 조국의 영광을 지키는 이 기회를 택했습니다. 안녕히, 안녕히들 계십시오.”
내이름은 ‘윤봉길’이다.
‘파평윤가’이고1908년에 충청남도 예산에서 아버지 윤황(尹璜)과 어머니 김원상(金元祥) 사이에서 태어났다.열살 되던 해에 덕산(德山)보통학교에 입학했었는데, 다음 해에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자퇴했다.그뒤로 동생인’성의’와 함께 한학을 공부했고, 1921년부터는 오치서숙(烏峙書塾)에서 사서삼경 등 한문학을 계속했다. 한문학 공부를 마치고, 1926년부터는 농민계몽•독서회운동 등 농촌사회운동을 했었다. 그때《농민독본(農民讀本)》이란 교재를 집필하여 야학회를 조직했으며 농촌의 발전을 위해 ‘부흥원(復興院)'이란 단체를 설립하여, 농촌 부흥운동을 추진하였다. 1929년 2월 18일 부흥원 주관으로 학예회를 열고, 촌극인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였는데, 농촌에서 문화활동이 많지 않던 당시여서 관람객이 매우 많이 모여 성공리에 마쳤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30년 3월6일‘장부(丈夫)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 경찰이 미행을 하여, 평안도 선천(宣川)에서 체포되어 45일간 감옥에 있었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였고, 만주에서 같은 길을 걷는 김태식(金泰植), 한일진(韓一眞) 등을 만나 함께 독립운동을 결의하였다.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야 성공적인 독립운동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상하이를 향해 갔다. 랴오둥 반도의 남단에 있는 다롄[大連]을 거쳐 산둥[山東]반도에 있는 칭다오[靑島]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독립운동 할 곳을 물색하기도 했다. 결국 1931년 8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고맙게도 프랑스 조계(租界 프랑스가 초차한 지역) 안에 있는 안공근(安恭根)님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우선 돈을 벌어야 했기에 박진(朴震)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일했다. 한편으로는 국제활동을 위해 상하이 영어학교에서 영어 공부도 병행하였다. 그리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인 김구(金九)선생을 찾아가 나의 뜻을 말하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것을 다짐하였다.
비장한 마음으로 기도를 마치고 나는 김구선생님과 마지막 밥상을 같이 했다. 선생님은 나의 태연자약함이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고 했다.식사가 끝나고 마침내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나는 나의 시계를 전해 주며 말하였다.
"이 시계는 어제 6원을 주고 산 새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기념으로 서로 시계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식장을 향해 떠나기에 앞서 나는 자동차에 앉아서 가졌던 돈을 꺼내어 드렸다.
"돈은 좀 가지고 있는 게 좋지 않소?"
"자동차 값을 주고도 5,6원이 남는 걸요."
서서히 자동차가 움직일 때 김구선생께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훗날 저승에서 다시 만납시다!"
나는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내게 인사를 했다. 자동차는 큰 소리를 내며 홍커우 공원을 향해 달렸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메이’아줌마가 “니취나?(어디가니?)” 하며 일본 쪽바리들 잔치하는데 왜 가냐고 궁시렁궁시렁 거리던 것이 생각난다.차안에서 어제 미리 갔었던 홍커우 공원을 생각하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차에서 내려 공원 정문에서 일장기를 사고 도시락과 물통을 손에 들고 검문을 받은후 천천히 식장으로 접근한다.도시락폭탄과 함께 싼 폭탄 무게가 10kg이 넘는데 어떻게 던지는 것이 좋을까 하숙집 뒤 공터에서 수없이 연습했지만 최소한 20m 이상 던져야 하기에 조금 걱정이 된다.
차창으로 거리를 보니 일본 국왕의 생일축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전쟁 승리 두 가지를 축하하는 기념식이 있는 날답게 거리곳곳에 일장기들이 넘실넘실 춤을 춘다.전쟁전과 달라진건 일장기뿐 일반중국인들의 모습은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전과 같이 자판을 벌이는 사람,인력거를 몰고 얼굴이 벌게져서 뛰어다니는 인력거꾼들,자전거타고 출근하는 사람들,길거리에서 장기두고 뒤에서 훈수하는 노인네들,찬거리를 들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웃는 아줌마들,담배를 물고 서있는 멋쟁이 장년의 신사. 이들은 분하지 않는 걸까? 나라,국가,민족의 개념이 약한것인가? 요즘 들어 부쩍 더 이해가 되지 않는 중국인들이다.
차가 홍커우 공원앞에 도착했다.길을 건너야 하는데 공원 정문양옆에 서있는 일본군의 95식전차가 눈에 확띈다.무게는 7.4톤,주포는 37mm 포,7.7mm 기관총이 붙어있고 최고속도는 45km, 승무원은 4명이다. 헬멧을 쓴 일본인 장교가 포탑해치를 열고 고압적인 표정으로 공원입구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겨누고 있다. 일본군이 진주할 때 상해를 빠져나가려다가 교통체증으로 막혀있던 승용차들 위를 짓밟고 지나갔던 바로 그놈이다.”스고이 데스네(대단하네요)”,”주고꾸모 오레다찌노까?하하하(중국도 이제 우리땅인가?하하하)”,”교 혼또 우레시네(오늘정말 기분좋네)” 기모노입은 일본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여기저기가 들린다.어깨가 부딫히며 사람이 몰려드는 입구에 헌병들이 몸수색을 하고 있지만 거의 형식적이다.거칠 것 없는 승리에 고무된 탓인지 일장기와 도시락,물통등 만을 확인하고 “도죠(들어가세요)”하고 통과 시켜준다. 드디어 내차례다. “난까 토꾸노 모떼이마스까?(뭔가 특별한거 있습니까)”헌병이 물었다.”바꾸탄 이빠이 모떼이마쓰(폭탄 가득 가지고 있습죠)” 헌병이 깜짝 놀라는 눈으로 날보다가 웃으면서 들어가라고 손짓한다.
어제까지 공원안에서 중국 여느곳의 공원과 같이 운동하는 사람,그림그리는 사람,모여서 태극권 기수련하는 사람,서예하는 사람,악기 연주하는 사람등이 가득했었는데,오늘 중국인은 찾아볼수가 없다.하늘가득 걸려있는 일장기,사람들 손에 빠짐없이 들려있는 일장기,또각또각 게다짝 소리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나는 차분해진다. 그리고 보자기에 들어있는 도시락폭탄을 만져본다.
“초산,물, 포름알데히드’로 다양하게 열을 가하고 식히고 해서 얻게 되었던 소금과 같은 하얀 알갱이를 탄산나트륨으로 중화하고 다시 따뜻한 아세톤에 최대한 녹인후 안쪽에 균열을 낸 도시락과 수통에 넣어 응고시켜 폭탄을 만들어야 해.” 얼마전 폭탄 제조 실험을 하다가 그만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은 ‘최능현’의 말이다.상해교외 숲에서 폭탄투척 실헝을 하다가 불발인줄 알았던 폭탄을 살피다 갑자기 그폭탄이 터지면서 폭사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 거사를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
경축식전 중앙 높은 단상에는 침략군 총사령관 육군대장 시라카와요시노리(白川義則)와 주중국공사(駐中國公使) 시게미쓰 마모루(重光葵)등 일곱명의 상해사변 원흉(元兇)들이 천주(天誅)를 기다리고 도열하고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가득품은 표정에서 승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관병식(觀兵式)을 마치고 축하식순으로 들어가 일본국가가 제청되었다.
君が代は (우리 천황 폐하가 다스리시는 이 치세는)
千代に八千代に (천대에 팔천대까지 가리라.)
さざれ石の (조약돌이)
いわおとなりて (바위가 되어)
こけのむすまで (이끼가 낄때까지)
조약돌이 바위가 되어 이끼가 끼다니 ‘영원 무궁토록’이라는 말같다.
‘いわおとなりて (이와오또 나리데 - 바위가 되어)’라는 가사가 나올즈음 살며시 도시락폭탄이 든 보자기를 땅에 내려놓았다.4월말인데 마치 한여름처럼 땀에 옷이 푹 젖어있었다.갑자기 몽롱해진다.
‘흠..내가 꼭 이일을 해야 하는 걸까?스물다섯!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더 넓은 세상,불란서,영국,미국,독일도 가보고 싶고..대한독립의 그날을 직접 느껴보고 싶은데…사랑하는 부인과 애기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꼭 부자로 살지 않더라도 고향에서 논 몇마지기 부쳐먹으면서 배주리지만 않도록 살고 싶은데…내가 꼭 이일을 해야 하는가? 폭탄이 불발이면 어떻게 하지? 내가 잡히면 모질디 모진 고문에 내가 견딜수 있을까? 영혼이란 것이 있을까?만약에 있다면 천주는 날 일개 테러리스트로 볼까? 애국지사로 볼까?... ’
땀이 눈꺼풀을 타고 눈으로 들어가 맵다. 주위의 일본인들도 더운 날씨가 짜증나는지 연신 부채질이다.얼마전 극장에서 본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뉴욕양키즈의 유명한 타자 ‘베이브 루스’와 이름은 기억이 안나지만 멋진 투구를 보이던 투수의 모습이 생각난다.오늘 난 투수가 되어야 겠다. 단한개의 공으로 일곱의 병살을 잡을 수 있는…와인드업을 하면 미리 눈치를 채니까 주자가 누상에 있을 때 도루를 견제하며 던지는 방법인 셋포지션에서 폭탄을 던져야 겠다.
‘단상까지의 거리는 약20미터!’
보자기에서 도시락을 꺼냈다.안쪽에 수류탄처럼 균열을 낼 도시락은 두께가 두꺼운 만큼 폭탄의 무게와 합쳐져 묵직하다.매끈하고 살짝 차가운 느낌이 산뜻하다.옆으로 살짝빠져나온 발화선을 왼손으로 잡고 뽑을 준비를 한다.발화선을 뽑은후 약 5초후에 폭탄이 터진다.가슴까지 올린 도시락의 발화선을 은근히 당겨본다.’불발이 되면 그냥 나가자.나가서 배타고 다시 조선으로 들어가자.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하고 가족에게 더 큰 사랑을 주자.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자.’천천히 발화선을 뽑는데 ‘뽁~’ 발화선이 갑자기 빠졌다.
‘이제 5초다.’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내머릿속으로 지금까지의 인생,알고 있던 모든사람,수많은 추억이 스쳐지나간다.’난 오늘 조선최고의 투수다.세계역사에 남을 최고의 병살구를 만들어야 겠다.’도시락을 잡은 오른손 아귀에 힘을 주면서 허리를 뒤로 재끼며 오른쪽어깨를 크게 연다.도시락을 잡은 손을 뒤로 빼면서 왼발을 무릎까지 올린다.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아래에 아무도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느리게 나오는 ‘기미가요’음악과 퍼덕이는 일장기와 부채뿐…
“휙~”
도시락을 던진 오른손이 앞사람의 뒤통수를 때리자 짜증스런 표정으로 돌아본다.공중에 떠있는 도시락이 몇시간 동안 떠있는 것처럼 천천히 날아간다.그제서야 기념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이목을 끌어 모은 도시락은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중앙에 앉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앞으로 천천히 떨어진다. 딱 그때 천천히 나오던 ‘기미가요’가 멈추었고 놀라 동그랗게 뜬 두눈으로 의자에서 일어나려하던 ‘요시노리’의 눈앞에 찰나의 순간 정지한듯 보였다.
“쿠아아아아앙~~~~~~~”
단상에 있던 자들은 마치 인형처럼 사지가 떨어지고 찢기면서 사정없이 나딩굴렀다.사람같지 않았다.내가 죽인것인가? “끄아아악~”눈에서 피를 흘리며 울부짖는 해군 함대사령관 노무라 요시사부로(野村吉三郞) 해군중장,잘린 오른다리를 들고 멍하니 앉아있는 제 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육군중장,창자를 쏟고 실신한 가와바다 사다쓰구(河端貞次) 거류민단장,그외 다른 사람들은 뿌연 흙먼지 속에서 잘보이진 않지만 피범벅이 되어서 쓰러져 있다.
그제서야 폭탄을 던진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앞에서 뒤통수를 맞고 흘겨보았던 일본인이 “고노야로다.”라고 하며 날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다.주먹,군화,발길질,개머리판,몽둥이가 무수히 내몸으로 쏟아졌다.입으로 뜨근한 피맛이 느껴지고 냄새가 진동을 한다.그냥 몸과 정신을 분리하고 싶다.얼마전에 큰맘먹고 집앞 양복점에서 맞춤 회색양복이 갈기갈기 찢겨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정신이 혼미해 진다.오늘 죽인 저일본인들과 저승에서 만나면 뭐라고 말할까?이렇게 말해야 겠다.
“남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으니 만족하게 여길 따름이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
강보에 싸인 두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국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의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사람이 되어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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