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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무기

미국의 독립을 이끈 ‘ 캔터키 라이플 ’




1812년 미국 뉴올리언즈, 붉은 색 군복을 입은 대영제국 군인들이 밀집대형을 이루고 위압적으로 걸어오고 있다. 위풍당당한 군악대의 음악과 함께 장교들은 말위에서 대형을 유지하라고 고함치고 있다. 그때 영국군 장교의 눈에 보이는 지저분하고 교양없는 식민지 농부 나부랭이들이 나무뒤에 풀숲에 기대고 업드려서 감히 대영제국 군인들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있다. 그것도 100m 이상 떨어진 거리
에서.. ‘쯧쯧..’ 그당시 총들은 10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쏘면 오차가 무려 1m 이상이었다. 그래서 밀집대형으로 전진하는 것이고 두려움을 이기며 적앞까지 가서 자욱한 연기와 함께 총탄을 뿌리는 것이다. 이때 연기속에서의 난전에서 아군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군복의 색깔도 화려한 붉은 색이나 파란색이 많았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당당하게 전진하던 대영제국의 군인들에게 겁을 먹은 듯 멀리서 농부나부랭이들이 총을 쏘기 시작한다. 탕탕 타타탕 탕탕.. 그총알은 비웃음의 썩소를 날리던 영국군의 미간을 뚫버리고, 가슴에 파고 들었다. 뭔가 이상하다. 도저히 총알이 맞을 거리가 아닌데.. 분명히 100m 이상 떨어져 있는데.. 계속 너무나도 정확한 총알이 비오듯 쏟아진다. 혼란스러워진 부대에 ‘대형유지!’를 외치던 지휘검을 든 장교의 오른손을 날아온 총알이 날려버린다. 이미 살아남은 장교는 없다. 1만명이 넘는 대군이었는데, 눈에 보이는 사상자만해도 수천명이다. 비겁한 식민지 반역자들은 숨어서 그것도 멀리서 총알을 정확히 날리는 신무기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냐? 신무기?

1812년 뉴올리언즈 전투에서 영국군은 3천명이상의 전사자를 남기고 패배했습니다. 그에 반해 미독립군은 20명 사망, 강선을 사용한 라이플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죠. 강선이 뭘까? 궁금하신분은 미식축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미식축구공을 던실 때 공에 회전을 줘서 던집니다. 그러면 공은 정확히 목표지점을 향해서 날아가죠. 총구에 강선이라는 홈을 만들어낸 시기는 15세기입니다. 이탈리아의 '베레타'가에서 운영하던 총기제조사에서 개발한거죠. 베레타는 지금도 유명한 총기제조사입니다. 정확도가 높아지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지만 제조비용 때문에 가격이 비싸 군대의 제식총기에는 적용되지 못했었죠. 빠르게 장전해서 밀집대형으로 가까이 가서 총을 마치 산탄총처럼 뿌려야 했던 당시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비겁하다고 까지 생각했었습니다. 귀족들은 전투중에도 식사시간이 되면 식탁위에 새하얀 식탁보를 펼치고 코스요리를 즐기고 티타임까지 적의 면전에서 즐겼다던 당시입니다. 그런데 아메리카, 무법의 서부시대를 살던 북미개척자들에겐 가격이 비싸도 잘맞는 정확한 총이 필요했던 겁니다. 독일출신 총기제조상들이 총신에 강선을 만들어 놓었고 둥근 총알을 가죽으로 싸서 장전하여 발사하는 라이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냥으로 먹고 살아야 했고, 힘이 정의였던 무법천지에서 자기자신과 가족을 지키려면 좋은 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독일계 이주민들이 많이 살았던 펜실베니아주의 숙련공들이 만들어 내던 고가의 라이플을 캔터키주의 사냥꾼들이 많이 써서 ‘ 캔터키 라이플 ’ 이라고 불리어지게 되었습니다. 지금 현재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의 독립을 이끌어낸 여러 가지 요인중 하나가 되었겠죠? 캔터키 라이플의 강선? 지금도 무기소지가 합법인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불의한 정부에 대항할수 있는 권리 그것도 무기를 가지고 대항할수 있는 권리이죠~. 미국독립전쟁에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