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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인도여행기 2000 ] #2, 반갑다! 카트만두


반갑다! 카트만두

-2000년 2월 1일 화요일…네팔-


1~2시간 잠시 눈을 붙이다가 ‘로얄 네팔 에어라인’ 부쓰에 줄을 섰다.


승객의 대다수가 한국, 일본, 대만, 네팔인 들이었다. 보딩하는 것이 왜 2시간이나 걸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인도여행을 계획하는 순간부터 조급한 마음을 버리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비행기에 탑승했을 때 나의 이코노미 좌석이 일등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의 미숙한 행정처리능력에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


밤 11시쯤 도착해야 하는 비행기가 새벽 4시쯤에야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은 네팔 비자부터 해야하기에 여권사진과 비자신청서, 여권을 가지고 뛰었다. 내 뒤에 여유 있게 걸어오던 일본인들은 지금의 그 여유 때문에 늦어질 2시간 정도의 시간에 짜증이 날 것이다. 흐흐흐~~


네팔은 공항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모든 방문객들에게 비자를 내준다. 처음 방문객은 30불, 두 번 이상 들어왔던 방문객에게는 50불(이것이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네팔을 거쳐 인도나 다른 주변국에 갔다오는 여행객에게는 55불을 받는다. 왜 다시 네팔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25불을 더 받는지 이해할 수 없던 나는 그냥 우겼다.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이런 식으로 공항에서부터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 네팔이 좋아 다시 방문하는 여행객에게는 더 싸게 해 주어야지?”


이렇게 계속해서 우기니까 20불을 깎아 주었다. 공항에서 비자요금을 깎다니 참 재미있는 나라다.


그렇게 경찰이 열어주는 게이트로 내려서니 니로즌이 날 마중해 주며 목에 환영의 의미인 천을 걸어주었다.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들과 포옹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유와 설탕을 가득 탄 차를 마시며 니로즈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며 선물을 하나하나 풀어주었다.



특히 CD카세트 플레이어에 입이 벌어지는 니로즈의 모습에 나도 기뻤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니 니로즈가 살며시 CD카세트 플레이어를 가지고 나가서 들어보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았다. 짜아씩~~


거의 잠을 못 자고 여덟 시에 인도 대사관으로 택시를 타고 출발했다. 산탄총으로 가지고 경비하는 고압적인 경비원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인도 비자는 한국에서 하루만에 얻는 것이 가장 좋다. 네팔에서 인도 비자를 얻으려면 우선 입구에서 표를 받아 대사관 직원과 인터뷰해서 비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창구에서 영수증을 받은 후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


무려 일주일... 일주일 후에 다시 대사관에 9시 30분까지 와서 게시판에 텔렉스로 자기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지 확인하고 일주일 전에 받은 영수증과 또 다른 비자 신청서, 여권을 맡긴 후 또 다른 영수증을 받아 그 날 오후 4시 30분까지 가면 여권을 준다. 아 참, 비자비용은 2100네팔 루피였다.


인도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한 후, 카트만두의 중심가인 타멜 거리로 갔다. 지난여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여러 색다른 모습이 눈을 즐겁게 했다. 네팔에서 가장 빠른 PC방인 영어로 Cyber Club(모뎀 56k)에서 메일과 홈페이지를 간단히 둘러보고 조금 전 새벽 4시네 도착했다.


카트만두 공항(삼성이 건축 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인터넷에서 인도에 대한 정보를 얻던 중 일정이 비슷해서 만나게 된 두 명의 여학생을 마중 나가기 위해서이다. 오후 1시 23분에 도착하기로 되어있었다.


-여기서 그 두 명의 동료 소개-


우선 나이순 첫 번째 여인은 올해 이대 법대 4학년에 올라가는 조소희양. 성격이 활달하고 어느 때는 남자 같고 똑똑한 전라도 처자. 두 번째 이번에 영상원에 입학하는 82년생 꼬마 정희경양. 참 신기하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초등 학생이었던 친구가 나와 같은 대학생이라니...



내가 열 아홉 살 때에는 인도? 네팔? 상상도 못했으니... 용기 있는 서울 처자임은 확실하다.


공항 앞의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 왜냐하면 아는 호텔 직원들이 호텔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 마치 시위하는 모습 같았다. 게이트에서 30m 떨어진 바리케이드 뒤에서의 그 모습을 처음 보고 난 정말 프리티벳을 위한 시위인 줄로만 알았다. 가까이서 보니 다 호텔 이름이었다.


계속 기다려도 로얄 에어라인은 오지 않고 오후 4시 반으로 연착이 되어서 내가 무비스타라고 부르는 비노트 집에 갔다가 차 한잔하고 같이 마중을 나갔다. 한명한명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 두 여인네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포기하고 갈까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바로 그때 나오는 것이다. 반가웠다.


다섯 명이 작은 택시에 같이 엉켜 타서 카트만두 시내에 고급 주택가인 바탄의 니로즈 집까지 갔다. 처음 접하는 네팔의 모든 것이 신기한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니로즈의 집에서는 니로즈의 어머니와 짜고 집에 아예 숟가락이 없다고 하기로 했다. 같이 밥을 먹으러 부엌에 갔는데...


처음 먹어보는 네팔 음식이 입에 맞지도 않고 손으로 먹는 것이 어색해서 쩔쩔맸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숟가락을 주어 식사를 마치고 내일 새벽 호반의 도시 ‘포카라’로 출발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하다가 니로즈와 다른 네팔 친구들과 함께 '엘라'라는 네팔 술을 연거푸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ZZZZ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