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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인도여행기 2000 ] #10, 셰르파


셰르파

-2월 9일 수요일-


아침에 ‘셰르파’에게 전화해서 내가 찾아가서 만나기로 했다.


‘셰르파’는 중대 동기인 ‘동완’의 소개로 네팔에서 만나기로 한 네팔인 형님이다.


중대에 입학한 94년 1학년때 ‘동완’의 연기를 보고 감동 했던 것이 생각난다.


셰르파는 동완의 아버님이 하시던 시골의 미나리밭에서 4년간 고생하다가 올해 1월에 네팔로 돌아갔는데 다시 한국에서 일을 하고 싶어했다. 날 만나고 싶어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11시로 약속을 하고 니로즈와 오토바이로 셰르파가 사는 동네로 찾아갔다. 서로 얼굴을 몰라서 헤메다가 간신히 만나게 되었다.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고 있었고 완전히 한국인하고 똑같이 생겼다. 한국말도 아주 능숙하게 잘했다.


그가 거처하는 집으로 가서 차 한잔하고 밖에 점심을 먹으로 나갔다. 희안하게도 점원들 모두가 청각장애자 였다. 네팔음식과 서양음식을 섞어 패스트 푸드점처럼 만든 레스토랑이었다. 스테이크를 시켜먹으면서 우리세명(나, 셰르파, 니로즈)는 ‘한국’에 대해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니로즈와 셰르파의 얼굴생김새가 너무나도 틀려 물어 보았더니 셰르파는 동북쪽 히말라야 산맥에서 내려온 티벳족이고 니로즈는 유럽과 중동에서 내려온 아리온계라는 설명이었다.


아리안계가 거의 상류층 권력을 독점하고, 동양계는 하류층 생활을 한다고 한다. 네팔엔 카스트가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심지어는 서로 다는 민족이나 계층사이에는 절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천년간이나 공존해 왔으면서도 절대로 피를 섞는 법이 없다고 한다. 네팔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도 자기민족 고유의 언어를 확실히 보존하고 지킨다고 하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알렉산더가 대제국을 이루면서 각민족의 피를 섞어 이민족간의 문화를 융화, 화합시키려 했던 노력이 허사였던 것이다.


식사하고 6시에 셰르파형집에 와서 술한잔하고 자기로 약속하고 니로즈와 오토바이를 타고 ‘피티풀’로 향했다. 산꼭대기의 사원까지 꾸불꾸불 이어지는 길을 올라가서 바라본 경치는 ‘멋지다’라는 감탄사 외에는 달리 형용할 수 없었다.


한가지 웃긴 점은 사원을 올라가는 계단 옆에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두 마리의 코끼리 동상이 버티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주 그위에 올라탔던지 삐죽삐죽한 침으로 코끼리의 등을 둘러 놓았다. 아이구~섬뜩해라 침도 뭉툭한 것이 아니라 매우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앉았다가는 끝장이다.

 



내려오면서 타이불교 사원에 잠깐 들렀다가, 부처님이 태어난 곳인 룸비니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니로즈와 함께 인도로 가는 버스표를 체크하기 위해서 니로즈 친구가 하는 여행사에 갔다. 그 친구 이번에 나 때문에 꽤 돈 벌었을 것이다.


‘소희, 희경, 동신씨, 지애’의 포카라 왕복표와 인도로 가는 버스표를 모두 했으니 내가 아예 호텔과 여행사를 만들어야 겠다. 그렇게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표를 체크하고 있는데 니로즈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치며 좋은데 가자고 한다.


따라간 곳은 캬바레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옆에 여자가 한명씩 붙어 말상대를 해준다. 절대 접촉이라든가 에로틱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내옆에 아가씨가 상당히 귀엽고 예쁘다. 그러나 그 네팔인 특유의 체취가 너무너도 강해서 거부감을 일으킨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무대에서 무희가 매혹적인 춤사위를 보여준다는데 셰르파 형과의 약속 때문에 가야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셰르파형의 집에는 7시쯤에 도착했다.


근처의 ‘다이너스티’란 중국 레스토랑을 찾아 식사부터 하고 보드카와 맥주시켜 한잔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네팔인들의 현실과 네팔의 역사, 문화, 사회에 대해서 재미있게 얘기했다.


다시 한국에 가려면 어떤 서류가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조사해서 도와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