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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인도여행기 2000 ] #8, 나가랑고트


나가랑고트

-2월 7일 월요일-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계란 프라이와 우유, 그리고 설탕을 듬뿍 넣은 차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의 가장 귀중한 재산인 메모장을 찾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니로즈의 사촌 집에 갔다.


오! 여기는 저택이다. 문도 엄청 크고 일제 미츠비시 바제로에 소형 일제 차 2대, 오토바이 여러 대, 그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까지... 정말 부자다.


집에 들어가서 메모장을 가지고 왔느냐고 물어보자 깜빡 잊고 가게에 두고 왔다고 한다. 이런...


나가랑코트에 가기 전에 간만에 한국 음식을 먹으로고 타밀 거리의 김치하우스에 갔다. 김치라면 이라고 해서 시켰더니, 컵라면이어서 김치 찌개 하나에 공기 밥을 여러 개 시켜서 밥을 먹었다. 젓가락으로 뜨면 흘러내리는 밥이 아닌 찰진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은 오히려 더 쌌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길래 물어보니 역시 한국인이었다. 인천교대 학생인 최지혜, 용산에서 사업하다가 좀 잘못되어 휴식 삼아 여행하는 정돈신씨.


오래간만에 먹는 김치 찌개가 맛있다. 시원하다는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 뜨거운 탕에 들어가면서도 으~ 시원하다, 뜨겁고 매운탕이나 국을 먹으면서도 으~ 시원하다. 정말 김치찌개 한 숟갈은 시원하다. 으~ 시원하다.


다같이 나가랑코트에 가기로 했다.


나가랑코트는 해발 약 3, 4000 미터에 위치한 곳인데 맑은 날은 눈 덮힌 에베레스트와 안나프르나 봉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관광버스가 아닌 로컬 버스를 타고 출발한다.


네팔인 특유의 체취가 물씬물씬 풍기는 지저분하고 복잡한 버스를 타고 박타풀까지 갔다. 박타풀에서 출발하는 조금 더 큰 버스를 타고 마을 파출소를 지난 후부터 우린 지붕위에 올라탔다.



여행안내 책자에는 기차나 버스 지붕 위에 올라가는 것을 위험하다고 말리지만 오! 정말 멋졌다. 한 번씩 나뭇가지가 머리나 어깨를 때리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상쾌한 산바람에 굽이굽이 도는 계곡길마다 바뀌며 펼쳐지는 절경들.


정말 이런 것을 하려고 여행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버스는 정상으로 가까이 올라가고 있고, 산정상에 가까이 가니 군 막사가 보였다.


3군 사령부 군악대에서 복무하다가 전역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때 좋은 기억들,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며 그 네팔 군인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네팔 헌병과 같이 사진도 한 번 찍고 나가랑고트 정상으로 걸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비교적 완만한 경사길을 소풍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올라갔다. 머리 위에는 독수리가 날개를 펴고 헹글라이더처럼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있고, 머리 바로 위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어느 샌가 하늘 색깔이 더 파래진 것 같았고 이마에서 솟아나는 땀방울을 시원한 바람이 훔쳐준다.


나가랑고트 휴게소에서 포도와 오랜지를 먹고 정상에 올랐다. 이런! 멀리 구름이 많이 껴서 히말라야 산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곳에서 홋카이도에서 온 일본인 부부를 만났다. 시골에서 같이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지역 사투리를 쓰니 아주 좋아했다. 같이 사진도 찍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진 후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러 산비탈을 내려갔다.


내려갈 때, 점점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조금씩 추워졌다. 중간에 어느 잔치 집에 들렀다가 거나하게 취한 노인들이 같은 버스에 타서 기분이 좋은지 노래를 부르고 웃고 했다. 마치 시골 외갓집 동네 잔치의 노인네들을 뵙는 것 같아 반가웠다.



박타풀에 내려서 간만에 고급레스토랑에 들어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네팔 전통 음식을 먹었다. 맛은 별로 없었다.


테라스 밑에는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좀 부유한 집의 결혼식인가 보다. 먼저 브라스 밴드가 행진하고 뒤를 따르는 소녀들이 색색의 가루분을 뿌리며 춤을 추고 신랑과 신부의 차가 뒤를 따른다.


그 차는 메이드 인 코리아의 구형 엘란트라이다. 게다가 여러 가지 색깔의 꽃으로 치장을 하고 뒤에 친지들이 걸어서 따른다. 머찌다!


마치 아라비안 나이트의 주인공 처럼 식사를 하고 계산서를 받았을땐 정말 욕이 튀어나왔다. 1500루비? 약 25000원.


‘제기랄 왜 이렇게 비싼거야!’


25000원이면 네팔에서 며칠간 떡을 치게 먹고 자고 놀 수 있는 돈인데...


니로즈의 어머니가 해 주시는 음식보다 맛도 없는데.. 바가지 쓴 것 때문에 기분이 나빠서 집에 가서 정동신씨와 엘라라는 네팔의 전통술을 몇 병 마셨다. 알고 보니 중앙대 영문과 선배인 서진원 형과도 아는 사이였다.


참으로 세계는 넓고도 좁구나. 나쁜 짓 하고는 못살겠다. 술을 좀 많이 마셨는지, 화장실에서 오바이트까지 했다. 술을 잘 못하는 니로즈와 니로즈의 사촌인 비누트에게도 원샷, 원샷하며 술을 먹여서 쭉뻗게 했다.


용산에서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마음을 정리하고 기분을 전환하려고 하는 여행이라면서 자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아 정말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하는 동신씨가 참 안타까웠다.


Fighting! 돈은 잃어도 되지만 용기만은 잃지 맙시다! 한국의 젊은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