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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인도여행기 2000 ] #6, 카트만두!




카트만두!

-2월5일 토요일-


천천히 일어나서 아침으로 삶은 계란과 네팔차를 먹고 나섰다.


네팔을 소개하는 책자나 포스토에 꼭 빠질수 없이 들어가는 붓다의 눈이 그려진 라마불교의 성지에 가기위해서…


택시를 타고 걸어 들어가는데 1년전 갔었던 티벳의 그리운 향냄새와 초냄새가 코에 들어왔다. 참 반갑다. 솔직히 티벳의 향와 네팔의 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면 네팔의 향이 훨씬 달짝 지근하게 향기롭다. 티벳의 향은 투박하면서 자연적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절안에 들어서니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티벳인들이 많이 보였다. 붉은 적삼을 두른 라마불교의 스님들도 많이 보였고 그런데 실제 티벳보다는 훨씬 깨끗하고 여유있어 보이는 사람들 뿐이었다. 중국에게 억압받는 티벳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민다.


‘FREE TIBET! SAVE TIBET!’


오래간만에 ‘옴마니 밧메홈’이 쓰여진 원통을 돌리며 절에 들어섰는데 탑에서 하얀 줄이 흐르며 말라붙어 있었다.


‘Chalk’로 만들어 졌다는데 ‘분필가루로 만들어 졌다는 건가?’아마 석회암으로 만들어 졌겠지…


많은 수행자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절을 돌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티벳의 독립’ ‘일제강점기’를 겪은 우리이기에 그들의 아픔이 더욱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들의 깊이 패인 주름살이 언제 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독립염원에 나도 작은 촛불은 하나 켜서 보탠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의 테라스에서 오래간만에 작은 사치를 누린다. 값비싼 식사를 하고 카트만두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니로즈의 사촌가게에서 공짜로 음료수를 얻어먹고…


그의 가게는 은으로 만든 식기, 제기 와 파슈미나, 카슈미르제품등을 취급하면서 대만과 일본에 물건을 공급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를 못했다. 아쉽게도… 나중에 자이푸르에서 인도로 여행온 그와 다시 만나게 된다.


이제까지 봐온 것을 종합해보면 니로즈의 집안은 거의 같은 계통의 일을 하고 있다. 니로즈의 집은 은과 보석을 세공해서 악세사리를 만들고 고모네는 작은 조각상을 만들고 사촌들은 은제기를 만들고 할아버지는 힌두교, 불교 탕카(탱화)를 그리시고, 다들 부유하게 살며 상류생활을 하느 것처럼 보였다. 나의 이상적인 비즈니스 파트너…


다시 택시를 타고 타멜거리에 왔는데…


앗! 이런, 가장 중요하게 가지고 다니던 메모장을 잊고 왔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테라스에서의 경치가 멋있던 레스토랑에 두고 온 것 같다.


니로즈의 사촌가게에 전화해 보니 1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뛰어갔나보다.


수화기를 들고 몇분 기다리다 보니 일본어로 된 수첩을 찾았다고 한다. 휘어갈겨 쓴 나의 글씨가 일본어처럼 보이나 보다. 우선은 안심…


타멜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다가 ‘소희’와 ‘희경’의 인도로 가는 버스표를 니로즈의 친구 여행사에서 예약했다. 인도와 네팔의 국경도시인 ‘소나우리’를 거쳐 ‘고락푸르’로 가는 야간 무비버스(밤에 덜컹거리면서 대체로 최신영화를 틀어준다. 요즘은…) 요금은 550루비이다. 100루비는 그때 약 1800(?)원이었다.


니로즈의 집근처에 오니 온동네의 개들이 같이 짖으며 우리를 반겨준다. 낮에 지나는 길에 턱이 잘린 채 쓰레기 더미에 죽어있던 개가 생각이 난다. 워낙 그런 자세로 여유있게 잠들어 있는 개들이 많아서 가까이서 보다가 많이 놀랐다. 불쌍하다는 감정보다는 정말 처참했다.


집에서 차 한 잔하고 TV에서 틀어주는 인도영화를 봤다.


인도영화에는 거의 공통된 요소가 있다. 우선 주인공의 피부색은 비교적 희며 서구인에 가까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 편집도 그리 매끄러운 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영화처럼 화면 전환이 되는 경우가 많다. 뮤지컬처럼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어떤 영화이냐를 막론하고 2/3 이상을 차지한다. 상영시간이 평균 2시간을 넘고 3~4시간에 이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속의 인생에 마약처럼 집착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는 것같아 꺼림직 했다.